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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렴 전 박정희 대통령 비서실장 별세,김정렴 프로필

박정희 정부에서 최장수 비서실장을 지내며 경제개발을 주도한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이 25일 오후 10시 별세했습니다.향년 96세입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가 고 김정렴 회장의 조카 사위라고 합니다.

 

김 실장은 1966년 재무부 장관, 1967년 상공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9년 3개월간 청와대에서 비서실장을 맡았습니다. 김 회장은 60~70년대 박 전 대통령 곁에서 경제 정책을 입안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나 충남 논산에서 자라며 강경상업학교와 일본 오이타경제전문학교(현 오이타대 경제학부)를 졸업했습니다. 1944년 한국은행의 전신인 조선은행에 입행했고, 그 직후 징집돼 일본군에 배속된 뒤 히로시마(廣島)에서 일제 패망을 맞기도 했습니다. 해방 이후 육군보병학교를 거쳐 육군 준위로 임관, 6·25 전쟁에 참전한 뒤 52년 예편했습니다.

 

김 회장은 한국은행 시절이던 1953년 29세의 나이로 1차 통화개혁을 전문(全文) 기안했습니다. 1959년 재무부로 자리를 옮겨 이재국장과 차관, 상공부 차관 등 경제관료의 길을 걸었다. 한·일회담 대표를 맡은 뒤, 재무부 장관과 상공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9년 3선 개헌안이 통과된 직후 상공부 장관이던 김 회장을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후임으로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했습니다. 역대 정부 최장수 비서실장을 거쳐 1980년 8월 주일대사를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났습니다. 1999년부터는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이사, 2007년부터 사업회 회장을 맡아왔습니다.

 

한국 경제의 설계자였지만, 몸을 낮춘 조정자로 일한 김 회장으로 인해 박정희 정부는 산업고도화 정책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었다. 농업개발, 산림녹화, 새마을운동, 의료보장제도 등 한국 사회 전체가 도약하는데 큰 역할을 한 주요 정책들도 이 무렵에 기틀을 갖췄다.

김 회장이 경제 관료로, 비서실장으로 경제 정책을 이끄는 동안 한국 경제는 비약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인 53년 67달러에 불과하던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박정희 정부 마지막 해인 79년 1510달러로 껑충 뛰었다. 윤 전 장관은 "김 회장은 한국 경제 산업화의 숨은 조력자이자 최대 공로자로 많은 후배 공직자들의 귀감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유족은 희경·두경(전 은행연합회 상무이사)·승경(전 새마을금고연합회 신용공제 대표이사)·준경(전 한국개발원 원장)씨와, 사위 김중웅(전 현대증권 회장, 현대그룹 연구원 회장)씨가 있습니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 14호실, 발인은 28일 오전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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